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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2-31 06:55
월정사 정념 큰 스님 강원일보 기고문 .갈등·반목 털고 대전환의 시대로
 글쓴이 : 천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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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2022년 임인년(壬寅年)의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2023년 계묘년(癸卯年)의 새해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 때 입니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떠했습니까. 그야말로 ‘갈등과 반목'의 시대로 회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틈을 찾을 수 없는 팽팽한 대립으로 일관된 1년 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회 전반이 끝을 알 수 없는 대립으로 점철되고, 갈등이 일상화 되면서 ‘소통과 화합’은 렉토릭(rhetoric) 안에만 갇혀 있을 뿐, 이제는 실재(實在)하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을 만날 수도, 또 목도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회통합의 장(場)이 되어야 할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러내면서 우리는 아주 명징하게, 진영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진 사회 분열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그 분열은 잦아들지 않고 끊임없이 분화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확증편향’ 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면서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가 횡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절대 이견이 나올 수 없는 ‘이태원 참사’의 추모 분위기에 대한 찬반이 갈리고, 유족들에게 행해지는 2차 가해, 그리고 그것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감히 나올 수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인간성 상실, 도덕성 상실의 위태로움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적 흐름들은 ‘효율’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발전’과 ‘성장’을 위해 앞 만 보고 달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 보내는 묵직한 경고의 메시지와도 같은 것입니다. 결코 ‘효율성’이 도덕성, 올바름과 등가의 쓰임새로 사용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한 착각들이 누군가의 삶의 지표가 되고, 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신조로 고착되면, 집착과 아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스스로가 만들어 낸 ‘마음의 안경’을 꺼내들고 세상을 바라 보게 됩니다. 이미 편견의 렌즈로 완성된 안경은 그릇된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하고 평가하게 합니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고인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할 때 입니다. 자신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고 있는 생각이 혹여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친 변견(邊見)은 아닌지 스스로 곱씹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그의 책 ‘회복력 시대’에서 말한 것 처럼 ‘효율성의 원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지지받지도 못 할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한 대전환의 시대를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열린 자세로 받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집착과 아집을 벗어내는 것이 그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한 마중물이 될 것 입니다. 논어의 ‘위령공편’에는 ‘過而不改 是謂過矣(과이불개 시위과의)’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그들의 삶 속에서 수없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실수를 인지하게 되면 스스로 참회하고, 고쳐가면서 타인과의 이해와 어울림 속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인 것입니다.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이 모든 염려가 일소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고 또 염원합니다. 도민 여러분 모든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심과 가피(加被)가 넘쳐나길 기원하겠습니다.